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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 여행길

'큰넓궤' 가는길(4.3문화탐방)

by 나그네 길 2018. 6. 18.

제주는 4.3사건의 애환을 안고 살아간다.

 

그래서 제주의 마을 곳곳마다 4.3 이야기가 전설처럼 얽혀 있고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4.3은 우리에게 살아있다.

 

 

오늘은 잃어버린 중산간 마을 '무등이왓'과

동광마을 주민들이 피신처 '큰넓궤'에서 4.3당시 슬픈 이야기를 들어본다.

  

 

지금은 잃어버린 마을 '무등이왓'

제주어에서 '왓'은 넓은 평야를 말하듯이 130여호 주민들이 살던 중산간 마을이다.

 

 

예전에 제주의 초가집 우영에는 대나무를 심었다.

들길을 가다가 대나무가 들러진 밭이 보이면 집터가 맞다.

 

 

무등이왓은 농사와 대나무 수공업을 하면서 평화롭게 살아가던 농촌이었다.

 

그런데 무장대를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토벌군경이 소개령을 내리고,

마을 주민 10여명을 재판도 없이 학살하면서 마을을 불태워버려 역사에 묻혀버렸다.

 

 

 

지금은 사라진 초가 울담을 따라 심어진 대나무 울타리만 남아

4.3 당시 잃어 버린 마을을 쓸쓸히 증언해 주고 있다. 

 

 

또 다른 4.3의 현장 '큰넓궤'로 걸어 가는 비포장 오솔길이 아름답다.

 

 

제주어 '궤'는 바위들로 이루어진 동굴을 뜻한다.

 

'큰넓궤'는 크고 넓은 바위 동굴이라는 말처럼

4.3당시 동광리 주민 120여명이 토벌군경을 피하여 50일 동안 숨어 살았던 바위동굴이다.

 

 

4.3당시에는 이렇게 우거진 나무들이 없어 토벌대에 동굴이 발각 되자.

주민들은 더 깊은 한라산 영실 볼레오름까지 도망가다가 붙잡혀 학살 당했다.

 

 

지금은 안전을 이유로 바위 동굴이 폐쇄되어 버렸지만

얼마나 넓기에 그 많은 사람들이 거주할 수 있었을지 상상해 볼 수 있다.

 

 

 

제주에서 4.3이 오래도록 애환으로 남아있는 것은,

국가 권력인 군경이 주민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학살했다는데 있다. 

 

군경 토벌대는 무장대를 색출한다는 이유로 중산간 마을을 불태우고

무장대를 지원한다는 의심만으로 아무런 재판도 없이 주민을 총살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렇게 중산간 마을 동광리 주민들은

무장대보다도 오히려 군경 토벌대가 무서워 동굴에 숨어 살았으니,

 

제주에서 일어난 4.3사건 토벌 과정이 얼마나 심각한 국가의 잘못이었는지 증명해 주고 있다.

 

 

4.3사건 당시 제주도민 전체의 10% 상당인 3만여명이 피해자라고 하는데,

피해자 중에서 80% 상당이 군경과 서북청년단에 의하여 학살 당했다고 하니 무슨 변명이 필요하겠나?

 

 

4.3의 상징 꽃은 빨간색 동백꽃인데,

오늘은 찔레꽃 하얀 잎이 이 유독 눈에 들어와

4.3의 아픔을 전해 주는것 같다.

 

 

제주 4.3 70주년을 맞아 문재인 대통령이 추년식에 참석하는 등

여기 저기에서 4.3문화 탐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이제 제주의 슬픈 역사 4.3은 이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 서귀포시 동홍동주민자치위원회 문화탐방을 마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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