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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 여행길

왕벚나무 자생지에 대한 의문

by 나그네 길 2019. 4. 20.

꽃 중의 왕이라 불리우는 왕벚나무의 자생지는 제주도이며,

이 자생지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서귀포 홍로성당 타케신부였다.

 

제주 왕벚나무 자생지 발견에 대한 정설(定說)을 보면,

 

"프랑스 출신 에밀 타케 신부는

1908년 4월 14일 한라산 북쪽 관음사 부근의 숲속에서 왕벚꽃을 발견하여 채집하여 유럽으로 보냈는데, 

그 후 1912년 독일 베를린 대학의 쾨네(Koehne) 박사는 그 표본을 연구하여

제주도가 왕벚나무의 자생지임을 세계 식물학계에 처음 알렸다."

 

 

제주도에 있는 왕벚나무 자생지 중에서

 신례리(제156호)와 봉개동(159호) 자생지는 천연기념물로 보호하고 있고,

 

관음사(제주도기념물 51호)와 오등동(제주도향토유산 제3호)도 자생지로 지정되어 있다.

 

신례리 자생지 왕벚나무

최근 발간한 "왕벚나무와 조선의 식물학자 타케신부(저자 정홍규)" 책을 읽다가

저자가 왕벚나무 자생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것을 보았다.

 

나 역시 타케신부가 발견했다는 관음사 부근의 왕벚나무 자생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관음사 자생지 왕벚나무

아래 그림은 1908년 당시 타케신부가 채집하여 보낸 왕벚나무 표본이다.

 

우리는 이 채집 표본에서

타케신부가 왕벚꽃이 화사하게 피었던 날 왕벚나무 가지를 채집했음을 알 수 있다.

 

<영국 에딘버러 식물원에 있는 타케신부의 왕벚나무 채집 원본, 서울대학교 장진성 교수 사진.>

 

타케신부의 왕벚나무 표본(채집번호 4638)의 원기재문에는

라틴어로 "Quelpaert, hoatien, 600m. 1908. 4. 14"로 적혀있는데,

우리말로 "4.14일, 제주 효돈 600m 채집" 으로 풀이할 수 있다.

 

식물학자 장진성 서울대학교 교수에 의하면,

"타케신부가 이 날  채집 영역은 서귀포 홍로 근처인 효돈이라는 동네이고

그날 함께 채집한 식물은 율벚나무, 산철쭉, 채진목과 고깔제비꽃, 잔털제비꽃, 낚시제비꽃, 그리고 각시붓꽃이 있다."

 

한편, 대구에서 (사)에밀타케식물연구소를 운영하는 정홍규 신부는 'hoatien'은 불어이며 '호아천'으로 읽는다고 알려 주었다. 신례리의 옛 지명이 '호아촌'이므로 타케 신부가 신례천을 불어로 호아천으로 썼다고 풀이한다. 

 

그래서 자료를 찾아본바, 홍로본당 교적에 1901~1910년 사이에 세례를 받은 지역별 신자수를 보면, 총 190명 중에서 출신 마을 이름을 효돈 2명, 예촌 16명으로 기록된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웃마을 명을 또미(위미리), 웃기(의귀리) 등 옛지명을 쓰고 있음을 볼 때, 신례천을 예춘내가 아니라 호아천이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명확한 것은 효돈이든 호아천이든 한라산 북쪽에 있는 관음사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봉개동 자생지 왕벚나무

나는 타케신부가 발견했던 왕벚나무 자생지를 찾아보기 위하여

올 봄에 왕벚나무 자생지를 여러번 탐방하면서 왕벚꽃이 피어남을 지켜보았다.

 

봉개동 1호나무

나는 식물학자가 아니며 왕벚나무 전문가도 아니므로

자생지에 대한 의문을 과학적 이론으로 증명하지는 못한다. 

 

봉개동 2호나무

하지만 오랬동안 타케신부의 생태영성을 함께 생각하고 기념사업을 추진해 오면서

식물 채집을 했던 타케신부의 마음 가짐과 행동 양식들을 유추해 볼 수는 있다. 

 

봉개동 3호나무

1908년 4월 당시 제주도는 도로가 매우 열악한 상태로 

서귀포 홍로성당에서 한라산 북쪽에 위치한 관음사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아마 한 이틀은 걸어야할 정도로 산길조차 없었던 시기였다. 

 

그리고 Daum백과사전 및 관음사 역사에  의하면

관음사는 1912년쯤 되어야 겨우 사찰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으므로

 

1908년 채집 당시에는 관음사라는 사찰도 없었던것 같은데

관음사 인근에서 자생지를 발견 했다는 기록도 의문이다.

 

타케신부는 1906년 가을부터 본격적인 식물채집을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식물채집을 한지 겨우 1년 6개월 정도로,

서귀포 주변과 한라산 남쪽에서 채집할 식물도 많았을텐데

한라산을 넘어 관음사 주변까지 채집행을 했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신례리 자셍지 왕벚나무

표본 4638의 원기재문 hoatien(효돈)라는 지명은 지금의 서귀포시 효돈동을 말하는것이 아닐까?

 

현재 수악교 부근의 신례리 왕벚나무 자생지는 

효돈동 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한라산쪽이며 고도 600m 정도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1908년 당시 타케신부가 거주했던 홍로성당에서 3시간 정도면 걸어올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왕벚꽃의 피는 시기는 한라산을 중심으로 남북이 약 1주일정도 차이가 난다.

 

대체적으로 4월 중순에는 산남지역 신례리 자생지에 왕벚꽃이 피는데

어쩌면 1908.4.14일 타케신부가 발견한 왕벚나무 자생지는 지금의 신례리 자생지일지도 모른다.

 

타케신부가 발견했다는 관음사 인근 왕벚나무 자생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만약 타케신부가 발견한 장소가 현재의 관음사 자생지가 맞는다면

제주도 기념물이 아니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는 것이 좋을것 같다. 

 

관음사 서쪽의 오등동 자생지 왕벚나무는 최근에야 중요성이 알려져

산림청에서 왕벚나무 기준 어미나무로 지정되었다.

 

오등동 자생지 왕벚나무

그렇다면 언제부터 왜 타케신부가

1908. 4. 15일 관음사 인근에서 왕벚나무 자생지를 발견했다고 알려져 있을까?

 

 

이러한 의문 해소 차원에서

제주의 역사와 지리, 선교 초기 사회환경과 식물표본 등을 참고하면서,

 

타케신부가 발견했던 왕벚나무 자생지가 정확히 어디였는지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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