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곶자왈 보전의 중요성을 인식한지는 그리 오래지 않았다.
우리 동네 사람들에게 '고지'로 불려지던 곶자왈은
잡목과 덤불이 어우러진 지네와 같은 곤충들이 많은 쓸모없는 숲으로 생각했을 뿐이다.
우연히 동홍주민자치에서 찾은 '제주곶자왈 도립공원'은 이미 친숙한 곳이다.
주변의 영어교육도시 'NLCS'에 딸과 사위가 근무하고 있었기에
도립공원을 개장하기 이전부터 자주 찾았었다.
탐방로는 목재 테크와 야자수 매트로 걷기 좋게 만들어졋고
곶자왈 중간에 휴식공간과 전망대 등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관광지화 되어 있다.
우리 일행도 숲속음악회로 야유회의 흥취를 즐기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곶자왈공원의 풍광을 걸면서 힐링의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예정된 행사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서 무언가 허전함에 뒤를 돌아본다.
제주곶자왈도립공원 - 잘 다듬어진 곶자왈!
이런 곶자왈은 내가 어렸을적이 다녔던 내가 알던 곶자왈이 아니었다.
곶자왈은 생명의 숲이었다.
곶자왈은 여기 저기에 물웅덩이와 숨골이 있고
뱀과 개구리 그리고 지네와 이름모를 곤충들이 살아가는 곳이었다.
커다란 나무들이 화산석을 휘감으며 땅위에 뿌리를 내리고
고사리와 이끼들로 가득한 숨골 사이로 차가운 수증기가 올라오는 곳,
곶자왈에는 그렇게 개방되지 않은 태고의 자연과 생명의 기운이 머금고 있었다.
오래전엔 아이들은 지네를 잡으러 곶자왈에 갔다.
봄, 가을엔 '지냉이(지네)'를 잡아 용돈을 버는데
위미목장 고이오름 곶자왈 주변에는 지냉이가 많아 사냥터 노릇을 했다.
국민학생 어린 나이에도 지내는 무섭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지내는 독이 있어 물리면 손이 퉁퉁부어 오르기도 하지만,
두 개의 이빨 중에 한 개만 못쓰게 빼어버리면 물지 못하기에
아이들도 지내잡이를 할 수 있다.
보통은 일요일 아침에 동네 아이들이 함께 지내잡이를 나가는데,
돌 밑에 사는 지내를 잡기 위해 골갱이(호미)와 지내를 담을 주맹기(헝겁 주머니)가 필요하다.
아이들 걸음으로 한시간 정도 걸으면 위미목장 지대가 나오고
이때부터 지내를 잡기 시작하여 곶자왈 지역까지 올라가면 점심때가 된다.
당시는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도시락도 없고 배고품은 당연하다.
그래서 곶자왈에 있는 유름, 틀, 빈둑과 같은 열매를 따먹으며 허기를 달래고
집에 올때까지 잡은 지내는 보통 30여마리 수준으로 기억된다.
지내를 팔면 돈이된다.
당시 풀빵을 사먹고 가설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군것질을 할 정도였으니
하루 잡은 지내를 지금의 가치와 비교해 보면 아마도 1만원 내외가 아니었을까.
그래도 아이들에게는 유일하게 용돈을 벌 수 있는 것은 지냉이 잡이였다고 기억한다.
우리에게는 어릴적 지내잡이를 하면서 보았던 곶자왈이 있다.
그 곳자왈은 온갖 생명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생태계의 보고이며
인간은 곶자왈의 손님이었을 뿐이다.
곶자왈은 '숲'을 뜻하는 '곶'과 '가시덤불'을 뜻하는 '자왈'이 어우러진 말이다.
말 그대로 생태계가 살아 있는 축복받은 땅으로 제주의 횐경을 보호해 주는 소중한 자원임에도도,
선흘곶자왈에 동물을 학대하는 사파리를 만드는 개발을 추진하고 있음은 놀라운 일이다.
제주에서 곶자왈 보전을 위한 민간차원의 노력들은 참으로 바람직하다.
마치 아마존이 지구의 허파이듯 곶자왈은 제주의 허파이기도 하기에
자연생태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향으로 곶자왈은 잘 보전되어야 한다.
'제주의 자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시목장의 쫄븐 마장길 (0) | 2020.04.03 |
---|---|
제주의 기후변화 - 눈 (0) | 2020.02.13 |
5.16도로의 가을 (0) | 2019.12.09 |
겨울딸기 자생지 (0) | 2019.12.06 |
시오름주둔소 찾아가기 (0) | 2019.11.2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