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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 여행길

제주 성안유배길에서 초가집을 만나다.

by 나그네 길 2014. 1. 28.

요즘은 제주에서도 전통 초가집을 잘 볼 수가 없다.

 

농촌지역에도 6~70년대 새마을사업으로

 대부분의 초가들을 스레트 지붕으로 개량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토요일 순례길사랑회에서 제주 성안유배길을 걷다가

제주시의 가장 중심지인 중앙로 골목에 남아있는 전통적인 제주의 초가집을 만났다.

 

초가는 안거리와 밖거리 2채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돌담과 새(띠)와 집줄로 바둑판 처럼 얽어 맨 초가 지붕은

사상 최고의 강한 태풍 사라호에도 끄덕없이 버티어 낼 정도로 튼튼하다.  

 

오늘 우리가 둘러보았던 제주 성안유배길,

제주에 유배왔던 분들의 적거지가 바로 이러한 전통 초가집이였을 것이다. 

 

 

천주교 제주교구 순례길사랑회는

제주교구 주교좌 중앙성당에서 정기총회가 있었다.

 

제주시의 가장 중심가에 위치한 중앙성당은

1899년 제주에서는 처음으로 설립된 유서 깊은 성당으로

제주지역 가톨릭교회의 중심으로 자리잡아 고고한 품위를 풍기고 있다.

 

 

양보현 시몬 회장의 주재로 간단한 회의를 마치고 나서

오늘 제주유배길을 안내해 주실 문화해설사 마리아 막달레나 자매님이

성안유배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이어 졌다.

 

 

아름다운 풍광과 세계자연유산의 섬으로 유명한 제주는

오래 전에는 독립된 탐라국으로 탄생하였으나

 

고려 숙종 때 탐라 국호가 폐지되어 고려에 편입된 이후

 고려와 조선시대 대표적인 유배지가 되어 버렸다.

 

 

이러한 유배의 역사로 인하여

추사의 높은 경지를 보여준 국보 ‘세한도’가 완성되었고,

조선왕조실록에 3,000번이나 등장한다는 송시열의 마지막 유배지였으며,

 

조선시대 가장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던 왕인 광해군이 삶을 마감했던 제주에는

우리나라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유배인들의 이야기가 곳곳에 남아있다.

 

제주도 유배길에는 

추사유배길, 제주성안유배길, 면암유배길 3곳이 있으며

제주의 유배인들을 통해 역사와 문화를 만날 수 있는 길이다.

 

유배인들의 삶의 궤적을 따라 걸다보면

오늘날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미래를 기약하는 이 길이야 말로

시대를 뛰어 넘으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열어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오늘 우리가 걸었던 제주성안유배길은

제주목관아에서 출발하여 시내 중심가를 돌아오는 3㎞코스이다.

 

 제주 역사와 문화의 중심지였던

옛 제주성을 중심으로 김정, 이익, 광해군, 송시열, 김진구, 김춘택, 김윤식 등

여러 유배인들의 유적지를 둘러보고 그들의 운명적인 삶의 이야기를 만나 보았다.

 

 

제주성안에는 12사람의 유배지가 있었는데

관덕정을 중심으로 멀지 않은 장소에 적거지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유배자 점고 등 관리하기가 용이하게 거주지를 배치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그 분들이 거주하였던 적거지에는 옛 것이 남아 있는 것은 하나도 없고

검정 표지석이 세워져 있어 옛 이야기를 짐작해 주고 있을 뿐이다.

 

 

유배길을 걷는 중에 적거지와는 관계없지만

제주시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탐라여관을 볼 수 있었다. 

 

이 여관은 제주도에 관광호텔이 생기기 전에는 가장 좋았던 여관인데,

 

오늘 함께한 어느 해설사에 의하면

6.25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제주를 방문했을 때에 숙소로 사용했다고 하였다.

 

 

제주시 칠성통은 서울의 명동과 같다.

아마도 제주인이라면 칠성통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 그 화려했던 칠성통의 명성은 간곳이 없고

한동안 침체기를 맞았다가 최근에 아케이트 상가로 부활하여 새로운 각광을 받고 있다.

 

 

 

산지천은 생명을 다시 살려 놓은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서울시에서 벤치마킹하여 청계천 복구 사업의 모델이 되기도 하였다.

 

이 아름다운 산지천을 시멘트로 덮어

그 위에 빌딩을 지을 정도로 제주시의 땅이 모자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빌딩을 건축할 당시에

어떤 개발론자들이 어떠한 이유로 산지천을 시멘트로 덮었는지

그리고 그 개발론자들은 그 사업으로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는지 밝힐 수는 없을까?

 

제주시 동문로터리의 해병혼탑!

전국의 도시 중에는 유일하게 해병대를 기리는 탑이 도심 가운데 있는 이유가 있다.

 

6.25전쟁 초기

북괴가 부산과 경상도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우리나라를 대부분 점령했을 때

 

제주도 청년들이 해병대 3기와 4기로 자원 입대하여

인천상륙 작전의 주역이 되는 등 혁혁한 전공을 세우면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 후 제주시 중심지 동문로터리가 해병대의 근간이 되었으며

나를 비롯한 많은 후대 청년들이 해병대에 입대하여 해병혼을 떨치는 계기가 되었다.

 

 

역사의 향기를 찾아 걸어가다 동문시장에서 만난 호떡집,

누군가의 제안으로 고소하고 달콤한 호떡을 '호호' 불면서 먹어 보았고  

 

순대골목의 어느 유명한 식당에서

순대국밥 한 그릇과 막걸리 한 잔으로 목을 축이는 재미는

오늘 순례에 참가한 회원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었다.

 

 

 

 

오늘 순례중에 보았던 적거지 표지석 중에서

 대략 절반 정도는 제대로 관리가 안되고 있었다.

 

표지석 위에 콘테나를 쌓아 놓아 안보이게 막아버렸는가 하면

아랫 사진처럼 양배추와 양파 봉지로 표지석을 가리져 있기도 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시장상인들에게  잘못을 지적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제주시에서 표지석을 만들면서 충분한 공간 확보 등 대비를 했어야 했다.

 

 

오현로에는 

제주의 옛사진들을 전시해 놓아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 준다.

 

 그러나 유흥준의 제주 문화 유산 답사기에서 지적을 했듯이

오현단에 있는 이상하게 생긴 건물과 오각형 비석은 정말로 개념없는 건축물이었다. 

 

 

 

해상왕국 탐라국의 역사와 상징을 보여 주는 칠성대는

북두칠성 모형으로 별을 숭상했던 탐라인의 기개를 생각해 볼 수있다.

 

중앙성당 앞길이 옛 중앙로였다는 말을 들으면서

지금의 중앙로가 곧은 길이 아니고 약간 삐뚤어지게 만들어 진 것은

개발 당시 힘있는 사람의 주택이 있어 중앙로를 그렇게 만들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 사람과 그의 자손들은 지금 이 삐뚤어진 중앙로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옛 중앙로에서 전통적인 초가를 만났다.

이제는 성읍민속마을에 가야 볼 수 있는 진짜 오래된 초가집이었다.

 

제주의 초가는 흙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자연과 인간이 함께하는 거주지로서

춥지도 덥지도 않게 계절에 따라 일정한 온도가 유지 되었으며,

장마철에도 나무마루는 그렇게 습하지는 않았다.

 

이제 이러한 초가는 잘 볼수가 없을텐데

앞으로 잘 보존해 줄 것으로 기대하면서 초가집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웠다.

 

 

 

저기 낡은 기와건물이 예전에 유명했던 중앙예식장이라고 한다.

 

예전에 제주도의 내노라하는 사람들은 이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여러 중요한 행사들도 이 예식장을 이용했다고 하니 세월이 무상함을 느끼면서

제주 성안유배길 순례를 마쳤다.

 

 

도심을 그냥 걸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나 성안유배길처럼 알고 생각하면서 걸으면 새로운 것들이 보인다.

 

오늘 제주 성안유배길 순례는 

제주에 유배왔던 분들과 전례 초기에 탄압을 받았던 신앙 선조들 생각하면서 

중앙성당에서 마침기도로 주모경을 바쳤다.

  

 

다음 일정을 기다리는 시간에 몇 사람은 커피숍을 찾았다.

 

무언가를 함께 하고 나누는 한 잔의 커피에는 많은 것들이 녹아 났지만

다음 달 마지막주 토요일에 다시 만나기로 하면서 아쉬움을 달랬다.

 

 

그리고 나는 신제주에서 쇼핑을 했다.

누가 이 신발을 골라주세요 ~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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