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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사람들

교황 광화문 시복미사의 감동

by 나그네 길 2014. 8. 20.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발걸음 하나 하나마다 감동이 연속이었다.

 

광화문 광장에서 서울시청 앞까지 가득 들어찬 신자들은

오픈카에서 인자한 미소로 강복을 주시는 교황님을 보기 위하여

키를 단 한치라도 더 크게하려도 발돋음하면서 환호하였고

서울의 하늘을 수십만명의 사랑의 열기로 가득 메웠졌다.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기쁨을 나누었던 때가 있었는가?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어렵고 가난한 사람의 친구이며

자신을 최대한 낮추고 힘들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로해 주셨다.

 

이렇게 많은 신자들이 교황님을 보기 위하여 환호하고 있는데도

아무 장식도 없는 저렇게 낮고 좁은 제대에서 가난한 교황님의 모습을 보게된다.

 

교황님은 한국 방문 내내 소위 잘나가는 사람들보다는 

어린이와 청년, 그리고 장애우와 세월호 가족 및 강정주민 등

자기 혼자서는 무엇을 이룰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만나며 함께해 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교황님을 위하여 한없는 사랑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시복미사에 참여하기 위하여 단단히 각오했으며,

더위와 목마름과 화장실의 불편함을 예상하며 전날부터 식사도 자재하였다.

 

그리고 오로지 먼 발치에서나마 교황님을 볼수 있고,

교황님의 집전하는 미사를 함께할 수 있음에 모든 어려움을 감수하며 오게되었다.

 

깊은 밤 2시50분,

우리는 경기도 화성의 숙소에서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안국동 4가로에서 하차하여 광화문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새벽 4시에 광화문 주변은 전국 각지의 인파로 넘쳐나고 있었다.

자신이 입장해야할 게이트를 찾으며 신분확인을 받으며 그리고 경찰의 검색을 받으며

여기 저기에서 쉬지 않고 밀려오는 사람들로 광화문 일대는 일찍감치 교통이 통제되고 있었다.

 

우리는 깔개 하나로 도로 위에 앉아

이 더운 여름날 땡볕속에서 무려 8시간을 견디어야 한다.

 

 

 

 

아침 7시반, 행사장 입장이 완료되었다.

가도 가도 끝없는 인파의 흐름이 어느 정도 멈추었다.

 

이번에 초대 받은 사람들은 17만5천명,

그리고 광장주변에 있는 사람들까지 최고 30여만명으로 추산되는데

언론에서는 연인원 80만명에서 100만명까지 모였다고 보도하고 있다.

 

 

 

 

 

광화문 시복식에 얼마나 많은 인원이 모였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1984년 교황 바오로2세 방한시에는 여의도에 62만명이 모이기도 했었기에

한국가톨릭교회에서 신자들을 동원하려면 100만명은 가볍게 모이게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더 많은 신자들이 모일 수 있는 한강공원 등에서 시복식을 하지 않고

수도 서울의 중심가이며 시민들이 교통통제로 불편을 주는 광화문에 모인 이유가 무엇일까?

 

 

 

 

 

이 광화문 광장은 조선시대 육거리이며

순교자들을 고문하고 처형하였던 의금부와 좌우포도청이 있던 자리였다고 한다.

 

우리는 천주교를 믿는다는 사실 하나로

만여명이 신자들을 고문하고 처형당했던 4대 박해를 생각하면서

 

순교자들이 고난을 받았던 광화문 이 자리에서

순교자들을 복자의 품으로 올려드리기 위하여 여기에 모인것이다.

 

 

교황님은 세월호 가족들을 아주 많이 보듬어주셨다.

 

행사장마다 그 희생자가족들을 초청하여 손을 잡으며 위로해 주셨고

희생자 아버지의 요청으로 직접 세례성사를 베풀기도 했으며

아직도 시신을 발견하지 못해 팽목항에 있는 가족들에게 육필 편지를 보내셨다.

 

이 가족들은 어디 의지할 곳 없는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전월드컵경기장 성모승천대축일 미사에서도 보았지만

광화문 시복미사 제대를 보면서 다시 한번 더 놀랐다.

 

저렇게 낮고 저렇게 작은 아무런 장식도 없는 제단에 제대가 놓여있을 뿐,

아시아 각국과 한국천주교의 추기경과 기라성 같은 주교님들도 외부에 앉아야한다.

 

제단에는 오로지 교황님과 공동집전자인 염수정 추기경 및 교황대사만 올라갈 수 있도록

어찌보면 초라하기까지한 제단이다.

 

바로 교황님께서 말씀하셨던

교회는 낮은곳으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사회에 나가야한다는 뜻인것 같다.

 

 

 

시복미사 중에 가장 불편한 것은 화장실이었다.

 

특히 자매님들이 이용하는 이동식 화장실은 턱 없이 모자라 긴 줄이 늘어서 있고

최소 30분이 소요되기도 햇으나 이미 각오하였던 것으로 질서 정연하게 이루어 졌다.

그래서 화장실 이용이 어려울 것을 예상하여 일부러 먹지 않기도 하였다.

 

 

 

 

교황님이 시청앞에서부터 오픈카를 타고 광화문까지 오시는데 20여분이 걸렸다.

 

그 동안에 우리는 대형스크린을 보면서 환호를 하였으며,

저멀리 아득히 멀리에서 교황님이 지나가는 차를 보기도 힘들었다.

 

예수님에게는 오천명이 군중들이 따라 다녔는데

키가 작은 '자케오'가 예수님을 보고 싶어 나무에 올라갔다가

예수님의 부름을 받았다는 성경말씀이 생각났다.

 

정말 저 나무위에라도 올라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제 시복미사가 시작되었다.

 

이상하게도 교황님이 집전하는 미사시간이 되면

아침 8시경에 쨍쟁 비추던 햇살이 어느새 사라져 버렸고

하늘에는 구름이 가득하여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전혀 덥지 않았다.

 

대전 성모승천 대축일 미사와 마찬가지로 시복미사 때에도

미사가 모두 끝나고 교황님이 퇴장하시면 여름 땡볕으로 변했기에

우리 순례자들은 이런 날씨를 교황님 날씨라고 불렀다.

 

 

교황님이 집전하는 미사는 라틴어미사이다.

그러나 성가와 여러 기도문은 우리 기도문으로 바쳤고

교황님 강론은 단락별로 번역해 읽어주었다.

 

 

이번 교황방한 미사에 배치한 성모님은 우리나라 성모님이다.

 

이 성모님은 아기 예수를 가슴에 품은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하여 예수님을 바치겠다는 의미처럼 보였다.

 

대전교구 성모님도 우리나라 한복을 입은 성모자상이었으며

이제 성모님은 우리 고유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하고 있는것 같다.

 

 

<교황님 시복식 강론>

 

순교자들의 승리,

곧 하느님 사랑의 힘에 대한 그들의 증언은 오늘날 한국 땅에서,

교회 안에서 계속 열매를 맺습니다.

 

한국 교회는 순교자들의 희생으로 이처럼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그 동료들을 오늘 기념하여 경축하는 것은 한국 교회의 여명기,

바로 그 첫 순간들로 돌아가는 기회를 우리에게 줍니다.

 

이는 한국의 천주교인 여러분이 모두 하느님께서 이 땅에 이룩하신 위대한 일들을 기억하며,

여러분의 선조들에게서 물려받은 신앙과 애덕의 유산을 보화로 잘 간직하여 지켜나가기를 촉구합니다.

 

 

막대한 부요 곁에서 매우 비참한 가난이 소리 없이 자라나고

가난한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좀처럼 주목받지 못하는 사회들 안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순교자들의 모범은 많은 것을 일깨워 줍니다.,

 

 이러한 속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어려움에 처한 형제자매들에게 뻗치는 도움의 손길로써

당신을 사랑하고 섬기라고 요구하시며, 렇게 계속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이어서 교황님은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을 선언하였다.

 

이때 모두가 축하의 박수를 보내며 환호하였고

복자 124위의 공식 화보, '새벽을 여는 사람들'이 공개되었다.

 

 

성찬의 전례는

교황님과 염수정 추기경님 그리고 교황대사가 공동집전하였는데,

대부분 라틴어로 진행된 미사였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성가는 평범하고 아름다운 성가를 모두 함께 할 수 있어 좋았는데

대전교구에서는 아주 부르기 힘든 성가를 성가대에서만 부르던것과는 대조를 보였다.

 

우리 강우일 주교님이 성가는 모든 신자들이 함께 부르는것이라는 말이 맞는것 같았다.

 

 

이렇게 많은 신자들이 영성체를 하기 위하여 걸린 시간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아마도 성체 분배는 사제만이 아니라

서울교구 성체분베자 수백명이 함께 봉사를 했기에 가능했던것 같다.

 

 

 

 

 

이렇게 교황님이 집전하시는 시복미사가 모두 끝났다.

퇴장을 할 때에도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교구별로 각기 다른 통로를 이용하였기에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

 

우리 제주교구는 종로 3가 교동초등학교에 버스들이 주차하였기에

그 곳까지 20여분 걸어서 갔다.

 

물론 쓰레기는 각자 가지고 나왔기에 광화문 광장에는 휴지 한조각 없이 깨끗하였으며,

다음날 여러 언론에서 천주교신자들이 일사분란한 모습과 도덕성을 찬양하는기사가 있었다.

 

 

나는 우연하게도 제주교구 13호차의 안내자가되었다.

 

그 버스에는 우리 서귀포성당만이 아니라

복자성당과 성산 및 표선성당 등 4개 본당 신자 38명이 탑승하였고 숙소도 함께 이용하였다.

 

여러 본당과 다양한 연령의 남녀 신자들이 함께 하였지만

모두가 합심하여 즐거운 순례가 될 수 있었다.

 

이 순례를 기쁘게 도와준 자매님들과 각 본당의 대표자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이제 교황님은 4박5일간 방한 일정을 마치고 바티칸으로 가셨지만,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행동과 말씀은

우리 사회의 여러가지를 뒤돌아 보는 계기가 되었던것 같다. 

 

이 시대에 교황님과 함께 할 수 있어 우리는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 프란치스코 교황님께 사랑과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기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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