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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pol)스토리

제주 4.3의 쉰들러, 문형순 경찰서장

by 나그네 길 2015. 4. 1.

나는 경찰에 재직 중에 문형순 경찰서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4.3사건 당시 문형순 성산포경찰서장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계엄군이 지시한 '예비검속자 총살' 명령을 거부하여

제주도민 수 백명의 생명을 구한 의로운 경찰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경찰에서는

이러한 문형순 경찰서장의 의로운 행위에 대하여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그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2차대전 때 유대인의 생명을 구한 쉰들러는 널리 알려진데 비하여,

우리나라 문형순 서장에 대해서는 경찰에서 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래의 사진은 4.3당시 '예비검속자 총살집행' 명령서이다.

 

1950830일 해병대 정보참모 김두찬 중령은

성산포 경찰서장 앞으로 '예비검속자 총살집행 명령의뢰의 건'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보낸다.

 

이 총살명령 공문을 받은 문형순 경찰서장은

명령서 상단에 '부당(不當)함으로 불이행(不履行)'이라고 쓰고

주민 수백명에 대한 사살을 거부하였다.

 

 

<위 사진 공문내용>

 "제주도에 계엄령 실시후 예비구속중인 D급 및 C급 중에서

현재까지 총살 미집행자에 대해서는 귀경찰서에서 총살집행 후 그 결과를 96일까지

육군본부 정보국 제주지구 CIC(방첩대) 대장에게 보고하도록 의뢰할 것" 

당시는 6.25 전쟁 중 계엄령이 내려져 있었던 시절이었는데,

날아가는 새도 떨어지는 서슬이 퍼런 계엄군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경찰이 과연 있을까?

 

다른 지역에서는 이러한 예비검속으로 인해 제주도민 수천명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문형순 서장이 있었던 성산포 관내에서는 단 6명만 희생되는데 그쳤다.

 

그가 아니었다면 마을 주민 수백명이 총살되거나

다른 지역 형무소로 끌려가 행방불명인으로 남았을 가능성이 컸다.

<4.3 평화공원 전경>

 

나는 이 분의 삶과 사상에 대하여 자세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위법부당한 명령에 대하여 거부할 수 있는 그 행동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그 분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존경해 주어야 한다.

 

만약 이러한 분들이 존경받는 경찰, 그리고 국가였다면

5.16이나 5.17같은 구테타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찰(警察)과 군(軍)을 비교하면서

명령체계를 중시하는 비슷한 직군으로 본다.

 

그러나 경찰과 군은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직업이다.

 

경찰은 법(法)을 중시하는데 비해 군은 명령을 중시하므로

경찰은 업무를 처리하면서 법과 규정에 맞는지를 따지게 된다.

 

그래서 경찰은 많은 인력과 무력을 가지고 있어도

세계적으로 구테타를 일으킨 사례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 4.3 희생자 유골 발굴 현장 >

 

 4.3사건 당시 광풍이 몰아치는 예비검속의 현장,

제주도 인구의 10% 상당인 36,000여명이 희생되는 암흑의 시기에

문형순 경찰서장처럼 위법부당한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경찰은 흔지 않다.

 

비근한 예로 나 자신 현직 경찰이었을 때,

강정 해군기지 국가 사업 현장에서 공사 방해 혐의로 사제들을 체포하면서도

생명 평화의 중요성에 대하여 아무런 소리 한번 내지 못했던 것이 현실이었다.

<최근에야 문형순 경찰서장 공덕비가 세워 졌다.>

 

우리나라 경찰은 문형순 경찰서장을 기억해야 한다.

비록 4.3사건 당시 토벌대과 함께 주민 학살에 가담한 경찰도 있었으나,

 

분처럼 계엄군의 명령을 거부하며 수백명의 제주도민 목숨 살려낸

제주 4.3의 쉰들러와 같은 경찰서장도 있었다는 사실을 높이 기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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