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당사람들

문창우신부와 제주4.3의 십자가의 길

by 나그네 길 2015. 4. 4.

가톨릭교회에서 성금요일은 유일하게 미사가 없는 날이다.

 

그러나 오후 3시,

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신 그 시간에는

신자들이 모여 예수님 수난을 상징하는 14처 십자가의 길을 함께 걷게 되며,

밤에는 십자가 경배 예식을하면서 주님의 수난과 죽음의 의미를 묵상하게 된다.

 

 

올 해(2015년) 성금요일은 공교롭게도 4.3 추념일과 같은 날이다

 

그래서 천주교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님은

제주4.3평화공원에서 '십자가의 길' 퍼포먼스를 마련하고

예수님 십자가의 수난과 제주 4.3의 아픔을 함께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제주교구 여러 성당에서 온 많은 신자들은

퍼포먼스 연극으로 재현되는 십자가의 길을 주교님과 함께 걸으면서,

 

아무런 죄없이 십자가에 처형된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면서,

 

4.3당시 군경토벌대와 무장대에 의해 죄없이 희생되었던

제주도민 3만여 영혼들을 눈물로 위로 하였다.

 

 

그리고 그 날 성금요일 밤,

서귀포성당에서는 십자가 경배 예식이 있었는데

현요안 주임신부님과 공동 집전한 광주가톨릭대학교 문창우 비오 신부님이

"4.3과 십자가의 길" 강론이 있었다.

 

문창우 비오 신부님은

제주4.3에 대한 논문을 여러편 쓰는 등 제주 4.3에 대한 전문가로써 

가톨릭교회 뿐만이 아니라 일반 사회에도 널리 알려져 있는 사제이다.

 

그 날 강론에서는 예수님 십자가의 수난을

제주 4.3의 아픈 상처와 비유하면서 우리 모두에게 감동을 주었으며,

 

예수님의 수난과 4.3의 영령들을 위로할 수 있는 묵상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 이하, 문창우 비오 신부님 강론 발췌>

 

1: 예수님께서는 사형선고 받으심을 묵상합시다.

 

온 세상이 당신을 미워합니다. 함께 먹고 마시며 당신을 따르겠다던 이들도 모두 떠나가 버렸습니다.

정의와 평화를 바라던 우리의 바람은 탐욕과 폭력앞에 굴복하였습니다.

성난 군중의 고함소리 가운데, 당신은 사형선고를 받으셨습니다.

 

1948, 제주는 뜻하지 않게 버림받았고 평화를 바라던 제주도민들의 외침은 비명소리로 바뀌었습니다.

벅차오른 해방의 기쁨앞에 경찰들은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6명의 억울한 죽음을 시작으로,

제주도민들은 빨갱이라는 내몰림을 당하기 시작하였습니다.

 

2: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심을 묵상합시다.

 

죄인들을 위한 십자가가 당신의 어깨에 얹혔습니다.

짓누르는 고통이 당신의 온 몸을 버겁게 하고 살갗을 찢는 고통이 당신을 위협합니다.

사람들은 당신의 업적을 망각하거나 혹은 그것에 대해 침묵합니다.

 

제주에 울린 총성에 사람들은 울분을 토하여 사과를 요구했지만 그들은 탄압과 투옥으로 응수했습니다.

수천 명이 삽시간에 감옥으로 연행되었습니다.

어느 집에서는 조사를 받으러 나간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3: 예수님께서 첫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열강들이 울부짖던 사상과 이데올로기, 도대체 이것들이 제주도민들에게는 무슨 소용이었겠습니까?

그들은 그저 행복하길 바란 소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을 매도하고 그들에게 총칼을 들이댄 군인들과 경찰들의 맹목적인 복종과 무지,

단순한 복수심으로 학살의 주체 역할을 했던 서북청년단까지 그들은 모두 같은 인간이었습니다.

네 편, 내 편을 가르기 전에 모두 존엄한 같은 인간이었습니다.

 

제4처: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만나심을 묵상합시다.

 

우익 무장 세력과 좌익 무장 세력 모두가 민가를 불태웠습니다.

 

 때문에 마을 주민들은 모두 동굴 안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어머니들은 혹시나 발각될까 두려워 아기가 맘 편히 울지도 못하게 입을 막아버렸습니다.

인기척을 느낀 토벌대가 동굴 가까이에 다가온 것을 알고 피난민들은 두려움에 떨었고

 

두려움에 자신이 아기의 입을 막은 줄도 몰랐던 그 어머니는

자신의 손에 주검으로 남아버린 아들을 보고서 절망감에 빠져들었습니다.

제5처: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 지심을 묵상합시다.

 

제주에 잠시 평화가 찾아들 줄 았았습니다.

도민들은 그들이 짊어졌던 십자가가 이제 좀 가벼워지리라 생각도 했습니다.

1948년 봄에 무장대와 토벌대가 평화협상을 하고 결과가 잘 이루러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협상후 군인과 서북청년단은 제주 오라 마을에 방화를 일으킴으로써 협상을 파기해버렸습니다.

이 방화 사건으로 인해 삶의 터전이 소실되었고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대립은 더 첨예한 양상을 띠게 되었습니다.

제6처: 베로니카,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 드림을 묵상합시다.

 

주님, 토벌대가 마을에 와서 한 아낙을 붙잡아 갔습니다.

그녀의 남편, 아들은 무장대와 토벌대 사이에 곤욕을 치르는 것이 힘들어서 산으로 피난한 지 오래였습니다.

그 아낙은 피난간 남편이 안쓰러워 의복과 먹을 것을 가져다 주면서 빨리 이 난국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바랄 따름이었습니다

.

그러나 그렇게 몇 타례 산을 오르다가 이내 토벌대에 잡혔고 산 사람을 도와준다는 빌미로 숱한 고문을 당하고,

비극적인 죽음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7: 예수님께서 두 번째 넘어 지심을 묵상합시다.

 

총과 칼로 무장한 토벌대가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산으로 올라간 자는 반공분자로 간주하며, 사살 것이다’라며 공포한 포고문에 따라

 ‘초토화작전’을 펼치기로 한 것입니다.

 

먹잇감을 향해 날뛰며 사냥하는 맹수같이

토벌대는 마을 주민들을 상대로 무차별적인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제8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여인들을 위로하심을 묵상합시다.

 

4.3은 단순히 암울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의로운 경찰들은 이웃 도민들을 위해 당국의 부당한 지시에 불복종하기도 하였고

사람들은 배고픔의 고통을 함께 겪으면서 없는 식량도 함께 나누어먹기도 하였습니다.

서로 숨겨주기도 하고, 학살터로 끌려가는 사람들 대신에 끌려갔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자신들의 생명을 내놓으면서까지 죽음의 문턱에 이른 이들을 살리고자 했던 그들의 사랑이

주님께서 여인들을 위로하시면서 보여주신 그 사랑과 닮았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제9처: 예수님께서 세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끔찍한 대량학살이 벌어졌습니다.

칼바람이 부는 쌀쌀한 어느 겨울에 북촌리 마을 사람300여 명이 초등학교 운동장에 모였습니다.

군인 두 사람이 산에서 저항하던 무장대를 시찰하던 도중에 죽음을 당했다는 이유를 추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에 대한 무자비한 보복,

인간생명에 대한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냉혈한이 되어버린 군인들의 사격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들풀이 눕듯 풀썩 풀썩 쓰러졌습니다.

 

제10처: 예수님께서 옷벗김 당하심을 묵상합시다.

 

정부와 군인들의 무자비한 초토화 작전으로

 벼랑 끝에 내몰린 제주 사람들은 힘든 피난생활을 계속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도민들이 겪었던 공포와 고통은 산에서 내려가는 발걸음을 무겁게만 했습니다.

 

토벌대와 군인들이 거짓 회유책을 펼치며 ‘내려오면 살려주겠다’고 할 때, 도

민들은 그 말을 믿고 하산을 했지만 군인들은 그들의 회유책을 번복하고

그들을 감옥으로 수감했으며, 죄명도 모른채 죽어갔습니다.

 

제11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을 묵상합시다.

 

주님, 제주 4.3은 격렬하게 반목하던 시대적 분위기와 정치 이데올로기적 야욕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이유도 모르고 희생되어야 했던 현대사의 비극이었습니다.

 

그들은 빨갱이로 몰렸고 아름다웠던 섬은 '빨간‘ 섬으로 낙인찍혔습니다.

 

 

제12처: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심을 묵상합시다.

 

4.3이 진행된 약 5년동안,

제주에서는 약 30,000명이 넘는 이들이 고문과 총살, 수장을 당하고,

죽창에 찔리기도 하면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무력하게 죽어간 분들의 희생은 오늘 우리에게 생명의 고귀한 가치를 일깨우고 있습니다.

주님, 그들의 희생을 되새김으로써 매 순간 우리들의 마음이 당신의 진리와 사랑안으로 향하기를 바라오니

당신의 십자가로 저희를 이끌어 주소서.

 

제13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내려지심을 묵상합시다.

 

주님, 우리가 십자가를 져야 할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당신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 하고 부르짖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4.3의 희생자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하며

 4.3의 십자가에서 우리의 시선을 거두고 그러한 비극적 역사와 무관한 듯 살아갑니다.

 

세상의 아픔에 무관심했던 우리를 용서해주시고

다시 우리가 아픈 곳을 향해 더욱 발을 내딛을 용기와 힘을 주소서.

 

 

제14처: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심을 묵상합시다.

 

주님, 당신은 온갖 공포 속에 떨면서, 부당하고 피비린내 나는 죽음에 우리가 분노하고 슬퍼함을 알고 계십니다.

당신께서는 진정 가장 고통스러운 자리에 몸소 오르심으로써 우리의 고통을 나누십니다.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그 사건을 통해 인간이 겪어야 할 죽음이라는 비극적 운명을 함께 받아들임으로써

4.3의 희생자들의 받은 고통과 아픔도 함께 나누어지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4・3당시 죽어간 사람들의 죽음을 위로하면서

그들의 죽음을 무고한 죽음, 억울한 죽음이라고 표현합니다.

 

 

 4・3당시 그 누구에게 해를 입히거나 원수 맺을 일을 하지 않은

수많은 비무장된 여자들과 아이들, 노인들이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죽어갔습니다.

 

그들은 폭도도 아니었고 ‘공산주의’의 공(共)자도 모른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욕망과 잘못으로 빗어낸 비극과 고통을 당할 때

하느님 도대체 어디 있느냐고 묻고 울부짖습니다.

 

 

4・3당시 하느님도 숨어 버렸고 오직 살육의 귀신만이 떠돌았다고 말합니다.

진정 그분은 당신 모습으로 창조한 인간들이 울부짖고 싸우고 죽이고 땅에 파묻는 폭력의 운동장에 있었습니다.

 

그분이 창조한 아름다운 동굴 속에서 질식해 죽어가고 배고파 죽어가는 그분의 아들딸들을 보았습니다.

수려한 폭포수가 사형장이 되어 버린 역설의 현장에 있었습니다.

그분이 보지 않는 죽음은 하나도 없었고 그분은 피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렇습니다.

4.3 으로 인해, 그분은 인간에게 심겨놓은 ‘하느님의 모상’의 모습이 무참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사람들 속에 있는 거룩함과 존귀함이 모두 모두 짓밟힌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 또한 그곳에서 죽어갔습니다.

그렇게 그분의 소리를 외면한 이들이 쏘아 부은 총알이 사람의 심장에 박힐 때

그분도 따라 죽었습니다. 그들은 그분의 십자가였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살아나십니다. 부활하여 일어서십니다.

이제 십자가의 고통을 넘어 영원한 구원의 원천이 되십니다.

 

-----------------------------------------------------------------------

 

- 광주가톨릭대학 교수 문창우 비오 신부 (2015. 4. 3, 서귀포 성당) -


문창신부님 강론집 원문은 아래 파일을 참고하세요.

문창우신부의 강론(제주 4.3과 십자가의 길)).hwp


 

문창우 신부님 강론( 4.3과 십자가).hwp
0.03MB
문창우신부의 강론(제주 4.3과 십자가의 길)).hwp
0.04MB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