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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사람들

성목요일- 발씻김 예식

by 나그네 길 2015. 4. 8.

지난 해였던가?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로마에 있는 소년원을 방문하여

 

청년 무슬림 신자의 발을 씻어 주고

그 발에 입맞춤을 하는 보도 사진을 보면서 감격해 했던 기억이 있다.

 

 

주님 만찬 성목요일의 '발 씻김 예식'은

요한복음에 예수께서 최후의 만찬 전에 제자들의 발을 씻어 준 것에서 유래되었고

 

이에따라 가톨릭교회에서는 부활전 성목요일이 되면

전통적으로 사제가 신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예식을 행하고 있다.

 

 

이러한 발 씻김 예식은 오랜 전통에 따라

예수님의 제자를 의미하는 평신도 대표 12명을 선발하여

사제가 발을 씻어주면서 평신도 사도직을 수행을 격려해 왔다.

 

그러나 올 해 서귀포성당의 '성목요일 발 씻김' 예식은 파격적이었는데,

본당 현요안 주임신부는 다문화 가족들에 대하여 세족례를 행하였던 것이다.

 

 

서귀포성당은 성주간에 장궤틀을 모두 치우

소공동체 구역별로 바닥에 둘러 앉아 미사를 참례하도록 했으며,

 

성목요일 미사 시작 30분 전부터 성당입구에서

신부님과 수녀님 그리고 본당 총회장과 여성회장이 함께하여

미사 참례하는 모든 신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예식을 선행하였다.  

 

 

그리고 '주님만찬 미사' 중에 행하는 '발 씻김 예식'은 

본당에서 가장 소외되기 쉬운 다문화 가족들을 대상으로 발을 씻어 주었다. 

 

마침 광주가톨릭대학교 문창우 비오 신부님이 미사를 공동집전하면서

아마 전국 성당에 거이 없는 '다문화 가족 발씻김 예식'에 함께 참여해 주셨다. 

 

 

나는 이런 다문화 가족의 발씻김 예식을 보면서

교황님이 무슬림 청년에 대한 발씻김이 오버랩 되면서 참으로 흐믓하였다.

 

다문화 가족들이 우리 성당 전례의 중심이 되도록 참여시키는 것은

바로 우리 가톨릭교회가 걸어가야할

작은 이웃들과 함께하는 소공동체를 이룰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다문화 가족들 발 씻김 예식은 어쩌면 그들에게 있어 커다란 사건이었다.

 

고향에서도 한 번도 참여해보지 못햇던 세족례를

이역만리 타국의 사제에게 '발 씻김'을 했으니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

 

발씻김 예식 내내 눈물이 그치지 않은 모습이었다.

 

어느 다문화 자녀님이 눈물을 가득 담고 어눌한 말로 나에게 말했다.

 

"회장님, 감사합니다. 이런건 처음입니다.

우리나라에선 높은 사람들만 발을 씻는데

회장님이 우리에게 해 주어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아니고 신부님께 감사를 드려야 한다고 대답했다.

 

우리 서귀포성당은 다문화 가족들의 모임인 '나오미 모임'을 만들었다.

 

그리고 매주 교중미사를 전후하여 다문화 가족방에서

간단한 회합을 가지면서 서로 서로의 신앙생활을 도와주고 있다.

 

 

나는 오늘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님의 '2015년 부활절 사목서한'을 기억한다.

 

"예수님은 누구도 배제하고 탈락시키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민족이 다르고 계층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문화가 달라도

우리 모두 한 아버지 하느님의 자녀임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어떠한 기업도 수많은 노동자의 피와 땀이 아니면 존재할 수 없고,

노동은 자본에 우선한다는 교회의 가르침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노동자는 경영자가 마음대로 부리는 종이 아니라

경영의 동반자입니다."

 

 

성목요일 주님만찬 미사에서 성체분배도 특이하게 이루어 졌다.

 

각 구역장들이 봉헌한 대제병과 포도주를 구역에서 서로 나누어 먹으면서

최후의 만찬을 기억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총회장이나 구역장들이라고 해도 성체 분배권이 없기 때문에

다문화 가족 각자가 스스로 성체를 먹고 성혈을 마시도록 했다.

 

어쩌면 이런 방식도 성체교리에는 미흡할지 모르지만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이렇게 각자가 빵과 술을 나누어 먹었기에

큰 문제가 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님만찬 성목요일 미사가 끝났다.

 

발씻김 예식에 참여하고 스스로 성체와 성혈을 먹고 마신 다문화 가족들은

뜻밖의 성목요일 미사의 은총에 기뻐서 어쩔줄 몰라 했다.  

 

예년에는 사목회 임원들 위주로 이루어 왔던 발씻김 예식을  

다문화 가족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참 잘한 일인것 같다.

 

내가 평소에 가톨릭 교회 내에서 아쉽게 생각해왔던

소위 잘나가는 신자들이 아닌 어렵고 힘든 이웃들과 함께하는

그런 보편적인 교회 공동체로 한 발 더 다가서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요즘에 와서 나는 다시 묵상해 보고 있다.

나를 작은 교회 공동체의 일꾼로 불러 주신 그 분의 뜻이 무엇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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