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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사람들

세월호와 함께 하는 성모의 밤

by 나그네 길 2015. 5. 6.

사랑하는 자식을 잃어본 사람만이 그 슬픔을 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을 바라보았던 성모님은

차가운 바다 속으로 사라져가는 자식들을 보며 가슴이 미어졌던

세월호의 가족들을 위로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가톨릭 교회력으로 5월은 성모성월이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5월 첫날에 성모님을 위한 기도를 바치는데

서귀포성당에서는 특별히 세월호와 함께 하는 성모의 밤 행사를 가졌다.

 

하얀색과 바다색으로 어울린 배 '세월호'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배위에 십자가와 성모상을 모신 다음 자구리 바닷가까지 행진을 하고

스티로풀로 만든 작은 배에 촛불과 함께 기도문을 적어 바다물에 띄운다.

 

그리고 '자구리공원'에서 미사를 드리면서 세월호 희생자와 그 가족들을 위로한다.

 

 

세월호는 하얀 광목천을 길게 감아

신자들이 함께 끌고 가기 쉽도록 두줄로 길게 늘어뜨렸으며

 

그 광목천에는 신자들이 노란 리본에 

세월호 희생자와 성모님에게 바치는 기도를 써서 묶어 주었다.

 

성모의 밤 행사는 성당마당에서 시작된다.

 

신자들은 세월호를 중심으로 앉아 시작성가와 기도를 바치는데,

이 행사가 페이스북을 통해 많이 알려졌는지 다른 본당 신자들도 많이 참석하였다.

 

이러한 성모의 밤 행사는

서귀포성당 현요안 주임신부님이 추구하는 문화사목의 일환인데

지난 3년여동안 이어온 실험미사로 축적된 기본이 있었기에 가능했던것 같다.

 

사실 이런 행사를 본당 차원에서 기획하고 실행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먼저 행사에 따른 각종 소품 준비가 만만치 않고

본당 신자들이 즐겁게 참여해 줄지도 의문이기 때문이다.

 

  

서귀포성당에서는 세월호가 이미 만들어져 있었으며

지난 주일부터 세월호 희생자들에 대한 노란 나비를 붙여 놓았다.

 

성모의 밤 행사는 

성당에서부터 배를 끌고 도로 행진을 시작으로

교통 흐름에 방해가 없는 최단 코스를 택하여 성모송 '고통의 신비'를 바치게 된다. 

 

 

행진이 자구리 바닷가에 도착하면

모든 신자들은 자구리 바닷가 '물 통'으로 내려가 스티로폴 배를 띠운다.

 

작은 배의 촛불은

마치 물속에 있는 영혼들이 올라와 이 배에 타고 있는것처럼

슬프게도 아름다운 빛을 발하였다.

 

 

그리고 미사를 시작하는데,

이 행사 준비를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가장 많은 봉사를 해 준 

강민희 수산나 자매님이 "성모님께 드리는 글' 낭독이 있었다.

 

수산나 자매님은 세월호를 꾸미고 스티로폴 배를 만들었으며

포스터와 노란나비 그리고 리본까지 제작하여 분위기를 높여 주었다.

 

 

< 성모님께 드리는 글 >

 

어머니께...(강민희 수산나)

 

비가 내렸습니다.

비밀스럽게 간직해오던 가슴속 싱그러움마저 흠뻑 적셔놓고는

세상은 이제 푸르디 푸르고 환하디 환하게 개었습니다.

 

 

그 푸르름과 환함으로

다시 시간은 당신이 세상에 머물던 옛 느낌들을 담아

 

영혼이 깨어나는 순간에 머무릅니다.

비가 개고 햇살이 비추듯..

 

 

아버지의 뜻..

그 순리대로 자연은 봄날을 지나 여름을 맞이하고,

또 가을이 지나 겨울..

 

그리고 다시 아이들이 배에 몸을 싣던

그 날의 봄이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심장에 새겨진

학생증을 움켜쥔 아이의 멍든 손가락..

아이의 삶의 희망찬 문자메세지..

 

그 기억으로..어머니는 오늘도

팽목항을 울음바다로 만들어 낼 수밖에 없는

하루를 또 살아냅니다.

 

 

십자가 아래 서있던 당신의 아픔을 감히 헤아려보며

통곡하는 이 땅의 어머니들의 마음 또한 그와 같지 않을까..

그들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헤아려 어루만져 주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저희는 오늘..

노란 리본을 들고 모여 기도의 향불을 피워 올려보려 합니다.

 

 

낮게 더욱 작게 자신을 낮추시고

오직 겸손한 순명으로 아드님을 위해

눈물로 절절히 기도하신 성모 마리아, 어머니시여!

 

저희도 당신을 닮아 슬픔 속에 주저앉은 힘없는 영혼을 위해

위로하고 기도하겠습니다.

 

 

그들의 슬픔이 나의 일이며

우리들의 책임이라는 걸 깨닫고 물러서지 않고 함께 서겠습니다.

 

받아들일 수 없는 이 아픔, 불길로 타오르는 분노,

세상 욕망과 이기심으로 굳어진 저희의 마음을

이 촛불과 함께 녹아 없어지게 하시고

그 마음자리에 당신 사랑의 등불을 밝혀 주시길 기도합니다.

 

 

아픔으로 신음하는 작은 이웃들을 늘 생각게 해주시어

배려와 사랑의 마음으로

서로의 십자가를 기꺼이 함께 짊어지고

 

당신 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 비추시는

부활의 은총에 이르는 길을 갈 수 있도록

이 밤!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이 땅 어머니들의 울부짖음 속 희생자 그들 모두

당신 따스한 사랑으로 안아주시길 바라며

 

당신께 바치는 이 기도와 슬픔을

어머니 당신 마음 깊이 간직하여

아드님이신 예수님께 봉헌하여 주소서.

아멘!

 

이 미사 중에

성체와 성혈을 거양하면서 바다로 돌아선 사제가 한 참을 서 있었다.

 

아마도 차가운 바다에 머무르고 있을 세월호 희생자들의 영혼을 위하여

그 영혼들이 이 제사를 통하여 영원한 안식을 누릴수 있기를 바라는 소망은

누구에게나 똑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풍선 날리기와

파리 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과 같은 깨끗한 목소리를 가진 소년,

 

윤대건 가브리엘의 천상의 고운 음성으로 부른 노래

 '천개의 바람의 되어'를 마지막으로 행사가 모두 끝났다.

 

 

오늘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맛보았다.

 

세월호 배를 만들어 성모상을 모시고 행진하면서

'아베 마리아'를 노래했고

 

자구리의 밤 바다를 배경으로 미사를 드리면서

아무런 잘못도 없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세월호 영혼들을 위로하였다..

 

이렇게 우리는 자구리 바닷가 '성모의 밤' 미사를 통하여

세월호 희생자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며

좀 더 풍요로운 미사 안에 머무르면서 우리 역시 풍성한 은총을 받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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