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순례길 여행길

정난주 순례길

by 나그네 길 2015. 4. 29.

우리나라 최고의 사대부 가문에서 태어나

조선조 최고의 천재 선비 학자와 혼인하여 부족함이 없는 삶에서

하루 아침에 제주도로 귀양와 37년 동안 노비로 살았던 여인이 있었다.

 

정난주 마리아,

그녀의 죄목은 '천주교인'이었다.

 

 

정난주 마리아는

우리나라 최고의 학자 가문 다산 정약용의 형 정약현의 장녀이며

한국 천주교 성조로 추앙받고 있는 이 벽의 질녀(누님의 딸)로 태어났다.

 

 

그 녀는 조선 시대 최고의 사대부 가문 황사영과 혼인하였는데,

황사영은 17에 진사 시험에 장원 급제하여 정조 임금의 총애를 받는 천재였다.

 

조선조 500년 역사를 통하여 십대에 진사시에 장원한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김시습, 성삼문, 맹사성이 그들인데  황사영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가를 알 수있다.

 

 

이렇게 명문대가에서 태어나 큰 벼슬 등 장래가 보장된 황사영은

천주교리를 연구하다가 '알렉시오' 세례명으로 입교하였으며,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조선 천주교회의 구원을 요청하는 '황사영 백서'를 썼다가

반역죄로 능지처참 처형되는 비극을 맞았다.

 

 

이 사건으로 황사영의 부인 정난주 마리아는

제주도 대정현에 관비로 유배되는 가혹한 처벌을 받았다.

 

단지 천주교를 믿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우리 나라 최고 사대부 가문에서 노예로 신분이 박탈되었으니

 

당시 조선의 당파 싸움에 이용당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는 너무 불행한 역사였다. 

 

 

 

사람들은 황사영의 백서를 거론하면서

그 백서를 써야만 했던 원인에 대하여는 생각해보지 않는 우를 범하고 있다.

 

만약 국가권력에 의하여 죄없는 수만명의 국민을 잡아 죽이는

그러한 인권과 사상적인 탄압이 일어났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현재 북한 김정은 정권에서 종교와 인권 탄압을 피하기 위해

우리나라 또는 중국에 구원을 요청하는 편지를 썼다면 

과연 우리는 그를 비난할 수 있겠는가? 

 

황사영은 교황청에 백서를 보내면서

신앙을 가진 백성들이 무자비하게 살해 당하는 현실을 알리고

그 백성들을 고통에서 구원해 주기를 기원하는 탄원을 했을 뿐이다.

 

 

불행한 여인 정난주 마리아는

유배길에서 두 살 어린 아들 황경한을 추자도에서 생이별하였고,

 

당시 제주에서도 척박한 땅 모슬포에서 37년동안 신앙을 지키며 살다가

66세가 되는 1838년에 세상을 떠났다.

 

오로지 신앙때문에 제주에 유배된 정난주 마리아는

겸손과 온유와 인내의 향기로운 덕으로써 이 땅을 정성껏 가꾸어

찬미와 감사의 제물로 자신을 바치는 삶을 살았으며,

 

이 땅 제주에 찾아온 첫 가톨릭 신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녀는 비록 피흘려 순교하지는 않았지만

노비로 살면서도 신앙의 향기를 잃지 않은 백색순교로 추앙을 받고 있다.

 

당시에는 노비가 죽으면 사체를 아무렇게나 버려졌던 시절이었지만

'서울 할머니'라고 불리며 동네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던 정난주 마리아가 순교하자

온 동네 사람들이 슬퍼하면서 양지 바른 곳에 묘지를 만들고,

후손들에게 편지를 남겨 잘 관리해 주도록 하였다. 

 

 

그 후 150여년이 지나갔다.

 

천주교제주교구에서는 1977년 정난주 마리아의 묘지를 찾아내어 정비하였

1994년 제주교구장 김창열 주교에 의해 대정성지로 선포하

신앙의 모범이 되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제주교구 순례길위원회에서는

정난주 묘역에서 추사 적거지를 거쳐 모슬포성당에 이르는 총 7km의 순례길을 조성하여

빛의길 정난주길이라 이름하고 2015년 10월 10일 개장할 예정이다. 

 

 

지난 토요일 제주교구 순례길사랑모임에서는

정난주 마리아 순례길에서 추사 김정희 유배길까지 함께 걸으며

유배지 제주도에 얽힌 사연과 정난주 마리아의 신앙을 느껴 보는 시간을 가졌다.

 

 

매월말 토요일에 순례길을 함께 걷기로한 해설사들의 약속이 

어느덧 17회를 넘어 가고 있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우리는

조선조 최고의 사대부 집안에서 유복하게 살아 가던 여인 ,

 

단지 천주교를 믿었다는 사실만으로 이 척벅한 땅 제주에 유배되었으나

천한 노비로 37년을 살면서도 신앙을 잃지 않고 백색순교를 한 여인,

정난주 마리아를 생각한다.  

 

 

하느님께서는

정난주 마리아를 천상적인 삶에서 나락으로 떨어뜨려

이렇게 백색순교를 하게 만드신 그 뜻을 묵상해 본다.

 

그리고 37년 동안 노비로 살아가면서도

신앙의 향기를 잃지 않았던 그 신심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하여도 생각해 본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