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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자연

제주의 억새 이야기 - 불씨를 저장했던 '화심'을 기억하며

by 나그네 길 2015. 10. 15.

제주의 가을은 은빛이다.

 

제주의 가을 10월이 되면,

오름과 들 그리고 중산간 지역은 온통 은빛 억새로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어로 억새를 '어욱'이라고 불렀는데,

사실 제주에서 억새는 별 볼일 없는 목초였다. 

 

초가지붕을 이는 새(띠)로 쓸 수도 없고

우마(牛馬)들의 먹이 '촐'로도 쓸 수 없는 딱딱한 풀이였기에

우리가 어렸을 적에만 해도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을 뿐이다.

 

제주에서 억새를 중요한 용도로 활용했던 것은 하나 있는데,

바로 불씨를 보관하는 화심(火心)이었다.

 

화심은 억새꽃을 딱딱하게 꽁꽁 말아서 노끈으로 꼼꼼하게 묶고 나서

불을 붙여 두면 천천히 타면서 불씨를 오래 간직해 둘 수 있는 생활용품이다.

 

 

왜 불씨를 보관하는 화심이 필요하냐고?

 

제주는 60년대까지만 해도 성냥이 귀한 시대였다면 믿을 수 있을까?

그 흔한 일회용 라이터조차도 80년대가 되어서야 유행되었으니 알만하다. 

 

 

어릴적 기억으로는

밭에서 일을 할 때 약 50cm 정도 된 억새꽃 화심에 불을 붙여 두면

하루 종일 천천히 타고 있었던것 같다.

 

할아버지는 억새꽃 화심을 이용하여 곰방대 담배에 불을 붙였고

고구마를 구워 먹으려고 불씨를 일으킬 때도 썼다.

 

<제주에서 억새가 가장 아름답다는 따라비 오름이다.>

 

이렇게 억새는

꽃을 이용한 '화심'외에는 활용도가 별로 없었다.

 

오히려 지붕울 이는 '새'나 소먹이용 '촐'에 '어욱'이 있으면

가라지처럼 솎아내어 버리곤 했었다.

 

단지 부엌에서 불쑤시게용 '검질'로 사용되었을 뿐이다.

 

 

제주의 흔한 목초 어욱이 갑자기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은

'제주 억새꽃 축제'가 개최되면서 부터  였다.

 

1993년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 억새군락지에서

도민과 관광객을 대상으로 제주 특유의 가을 풍광인 억새를 주제로 한 관광 문화 축제를 시작되었다.

 

 

그 후 제주 가을의 대표 축제로 이어지던 제주억새꽃축제는

 2006년도 부터는 새별오름으로 장소를 변경하였으며,

 

2009 "억새와 바람! 그리고 웰빙 체험의 추억!”이라는 주제로 

16회 제주억새꽃축제를 끝으로 17년 동안 이어왔던 축제는 폐지되었다. 

 

 

이제 제주의 억새는 축제가 없어도 더 빛을 내고 있다.

 

오름과 들과 오솔길 어디에도 억새꽃이 억세게 자리잡아

가을을 즐기는 우리 인간들에게 은빛 사랑의 날개를 흔들어 준다.

 

 

제주의 억새는 바람이 있어 더욱 빛을 낸다.

바람부는 가을날 억새가 무성한 오름에 올라보자.

 

마치 물결처럼 일렁이는 억새와 만나면서

왜 제주의 억새가 이리도 아름다운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제주에서도 억새가 유명한 오름들이 있다

그 중에서 라비 오름과 악근다랑쉬오름 억새가 가장 좋다고 한다.

 

몇 해 전에 악근다랑쉬오름에 올랐다가

억새의 파도에 부딪치며 소리를 질렀던 기억이 있었는데,

지난 주일 따라비 오름에서도 저절로 만세를 부르게 되었다.   

 

 

제주의 거센 바람에 파도되어 밀려 오는 억새꽃 보았다.

 

한 번의 파도 뒤에 또 다시 억새꽃 파도가 되풀이 밀려 오는 날, 

제주의 바람까지도 카메라로 찍었다는 어느 사진작가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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