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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 여행길

추자도 순례길에서 백색순교자의 슬픈 이야기를 만나다.

by 나그네 길 2017. 9. 6.

추자도에도 순례성지가 있다.

 

 

 

200년전 정난주 마리아와 두살배기 아들 황경한의 슬픈 이별 이야기가 어린 갯바위에는

언제부터인가 눈물의 십자가가 외로이 서있다.  

 

 

 

제주에 살면서도 추자도를 방문하기는 쉽지않다.

 

지금은 "퀸스타 2" 쾌속 여객선으로 1시간 정도 걸리는 바닷길이지만

수시로 변덕을 부리는 바다의 날씨가 하룻길 방문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제주사람인 나 역시 이번 순례길 여정으로 추자도를 처음 방문하였다.

 

행정구역은 제주도에 속한 추자면이지만 제주의 풍광과는 다른 느낌

추자의 산과 바다는 한 층 더 슬프게 아름다웠다.

 

 

 

추자에 가면 절경이 많이 있어 하룻길도 모자란다고 하지만,

우리는 백색순교자 정난주 마리아의 이야기를 따라 순례지를 위주로 둘러보았다.

 

 

 

오늘, 여름이 막바지를 넘어가는 추자도의 날씨는 선선한 느낌으로

우리 제주교구 순례길 해설사들을 반겨준다.

 

 

 

정난주 마리아는

조선조를 통하여 가장 기구한 운명의 여인이었다.

 

그 녀는 우리나라 최고의 학자 가문 다산 정약용의 형 정약현의 장녀이며

한국 천주교의 성조로 추앙받고 있는 이 벽의 질녀(누님의 딸)로 태어났다.

 

 

 

그 녀는 조선 시대 최고의 사대부 가문 황사영과 혼인하였는데,

황사영은 16에 진사 시험에 장원 급제하여 정조 임금의 총애를 받는 천재였다.

 

조선조 500년 역사를 통하여 십대에 진사시에 장원한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

김시습, 성삼문, 맹사성이 그들인데  이렇게 비교해 보면 황사영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가를 알 수있다.

 

 

 

그런 배경의 여인 정난주 마리아가 단지 천주교를 믿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조선조 최고의 정경부인에서 노비로 신분이 박탈되어 제주 대정현에 유배되었으니

 

당시 조선의 당파 싸움에 이용당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는 너무 불행한 역사였다. 

 

 

 

정난주의 두살 아들 황경한은 추자도로 유배되었는데,

 

 

어머니 정난주마리아는 평생 노비로 살아야하는 아들이 너무나 안타까워

뱃길에 사공들과 잘 타협하여 추자도 바닷가 어느 갯바위에 아기를 내려놓고 간다.

 

 

 

어린아이의 슬픈 울음소리는 소를 먹이던 마을주민에게 들려 구조되었고,

 

이 후 황경한은 추자의 오씨 집안에서 자라나 황사영의 대를 이어가게 만든 이야기는

정말 동화같은 슬픈 스토리로 오늘날 많은 순례자들의 심금을 울리게 만든다.  

 

 

 

오늘 순교자 황사영 알렉시오와 신앙의 증인 정난주 마리아의 아들 황경한은

천주교 탄압의 슬픈 역사롸 함께 이 땅에 묻혀 순례자들을 맞이하고 있다.

 

마침 우리의 여정에 맞춰 서울에서 온 순례자들이 미사를 드리고 있었다.

 

 

 

우리는 신앙의 증인 정난주 마리아를 백색순교자로 부른다.

 

비록 피흘려 순교하지는 못하였으나

유배 37년동안 대정현 관비로 살아가면서도 신앙을 잃지 않았으며

 

마을주민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정도로 신앙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주교구에서는

정난주 마리아의 묘역을 대정성지로 성역화하였고,

 

정난주순례길을 조성하여 순례자들에게 백색순교의 슬픈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황경한의 묘역 옆에는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작은 샘이 있다.

 

추자도 사람들은 이 물을 어미를 그리워하는 아들의 애끓는 마음에 탄복하여 내리는 물,

'황경한의 눈물'이라고 부르고 있다.

 

 

 

추자도 순례길은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다.

그냥 어디나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면 화보가 나올 것 같다.

 

 

 

어릴적 보았을법한 빨간스레트지붕이 있는 골목길도 아기자기하게 아름답다.

그래서 추자도에서는 걸어야 정감을 더 느낄 수 있다.

 

 

 

묘지에서 내려오다 만난 황경한의 집 옛터는

아무것도 없이 흙이 보이는 썰렁한 우영밭이었다.

 

 

 

어디에서든지 쉼은 좋다.

각자가 챙기고온 주전부리를 모으면 오천명을 먹일 수 있을 것이다.

 

 

 

추자공소로 올라가는 골목길은 둘이 걸어도 좋다.

 

아무리 늦어도 길을 잃지 않을 것 같은 느낌

바로 우리 동네 골목길이다.

  

 

 

추자도에는 공소가 있다.

 

주임신부가 상주하지 않는 교회를 공소라고 부르는데,

공소에는 본당과 달리 사제가 없으므로 미사를 지낼 수가 없다.

  

 

 

추자공소에도 제주순례길 스템프가 있어 순례자들을 인증을 해 주고 있는데,

우리 역시 처음으로 인증 스템프를 찍어보았다.

 

 

 

추자항은 아름답다.

 

마치 남부유럽의 아드리아해 해변마을을 연상시키는 풍경이

여행자들을 반겨준다.

 

 

 

여객선 시간이 남으면 마음놓고 주변을 걸을 수 있다.

추자 올레길을 걷다가 입항하는 여객선이 보이면 대합실로 내려가도 충분하다.

 

그래서 추자도에서는 누구도 서두르지 않는다.

 

 

 

추자도에서 가 볼만한 곳을 물으면 누구나 같은 대답한다.

나바론언덕과 최영장군 사당 그리고 눈물의 십자가는 꼭 봐야한다고,

 

그 중에서 나바론 언덕은 가보지 못했으니 다시 오고 싶어질게다.

 

 

 

고려 공민앙때,

석질리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제주로가던 최영장군이 풍랑으로 추자에 잠시 머물렀는데

그물을 만들어 고기를 잡는 법을 알려주었다고 해서 어민들이 지은 최영장군 사당.

 

중국에는 삼국지의 관운장을 기리는 관제묘와 비교하면 좋을듯 하다.

 

 

 

사진으로는 이렇게 잔잔한 바다도 막상 배를 타면 거칠다.

올 때처럼 멀미를 할까봐 약을 챙겨 먹으니 좋았다.

 

 

 

추자도 순례길에서는

정난주 마리아와 두살배기 아들의 이별 이야기를 곳곳에서 들을 수 있다.

 

그래서 순례자들은 바닷가 갯바위를 찾아 인증샷을 남기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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