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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자연

제주의 '메밀음식'이야기

by 나그네 길 2017. 10. 9.

올 추석연휴에 찾아본 메밀밭은 비록 봉평만큼은 못하였지만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들이

마치 소금을 뿌린 듯이 흐븟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마치 이효석님의 소설 속 '나귀를 몰고 가는 허생원'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메밀을 제주어로 '모믈'이라고 부르는데,

척박한 땅 제주에서 모믈은 오래 전부터 먹거리로 대접을 받아왔다.


메밀을 이용하여 만든 제주 음식,


'모믈정기(빙떡)' '모믈만디(만두)' '모믈묵적'은 제사상에도 올리고

'모믈범벅'과 '모믈돌래떡'은 가난한 사람들이 생명을 이어오는 음식이었으며

꿩고기로 만드는 '모믈저배기(수제비)'는 별미로 알려져있다.

 

< 빙떡 : 모믈정기(사진은 안다 여행이야기에서) >


이러한 모믈음식 중에서도

특히 모믈정기(빙떡)와 솔라니구이(옥돔구이)는 가장 궁합이 잘 맞는다고 알려져 있어


지금도 명절에는 제주 사람들 입맛을 즐겁게 만들어 준다. 


< 제주의 대표적인 생선 옥돔구이 : 솔나니구이 >


제주의 '모믈만디'는 가장 단순한 떡이다.

메밀가루 속에 무우채 고명을 넣고 쪄서 팥고물을 묻히면 끝이다.

 

봉평의 메밀떡 보다는 크기는 하지만 별 맛이 없는게 특징이랄까?


< 제주의 모믈만디>


제주의 메밀음식은 아무 맛도 없는데,

메밀과 무우가 잘 어울린다고 하여 메밀식에는 대부분 무가 들어간다.


그래서 제주의 메밀칼국수에는무우채만 썰어 넣어 그냥 먹었다.



그러나 제사용으로 만들어지는 모밀묵적은 순수한 메밀반죽으로 적을 만든다.  

그냥은 아무 맛도 없으나 옥돔구이와 함께 먹으면 건강식이 된다.



내 어릴적에 가장 싫어 했던 메밀 음식은

메밀반죽에 고구마를 썰어놓고 삶아낸 '모믈범벅'이다.



제주에서 겨울이 다 지나갈 때 쯤이 되면 보리쌀까지 떨어지게 되는데

이 때 허기를 면하기 위한 한끼 식사로 모믈범벅을 내놓게 된다.


 이렇게 맛도 없게 생겼으나 이 '모믈범벅'으로 제주인들은 생명을 이어왔다.


<서귀포향토문화 사전의 모믈범벅>


제주의 특이한 '모믈돌래떡'은 장지와 굿판에서만 사용되었던것 같다.

아래의 돌래떡은 정통 돌래떡에 비하여 크기가 작은 것 같다.



아무 양념도 없는 메밀반죽을 둥그렇게 만들어 쪄낸 떡인데,


장례식때 봉분을 만드는 작업을 마치면 나누어 주는 떡이며

심방(굿판)이나 본향당에 올리는 떡으로 무(無)맛이 특징이다. 


이렇게 제주의 메밀음식은 힘들고 어려운 시절에

맛이 아니라 생명을 이어가기 위하여 만들었던 지극히 서민적인 음식이었다.



제주의 고온 다습한 기후와 비탈진 밭은 메밀경작에 알맞다.


6월에 수확이 끝난 보리밭에 메밀농사를 짓게 되는데,

여름철 더위를 피하기 위하여 새벽에 메밀밭에 따라갔던 어린 날 기억이 선하다.

   


메밀밭에서 먹는 점심은 가장 단순하다

.

차롱에 담아 나무에 걸어 놓았던 보리밥,

맹물에 된장을 풀어 오이를 썰어 넣은 '오이냉국'과 '자리젖'이 전부다. 


가끔 옆 밭에서 따온 시원한 수박을 먹고나면

수박씨에서 싹이 돋아 메밀을 수확할때는 주먹만한 수박이 열리기도 한다.



이러한 제주의 메밀음식들은 고려시대 몽고 점령기부터 이어왔다고 하니

말이나 키우던 유배지 제주인들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삶을 이어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래도 제주의 '모믈정기'는 '빙떡'이라는 이름으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모믈정기' 만드는 법도 너무 간단하다.

아궁이에 가마솥 뚜껑을 불에 달구고 묽은 모밀반죽을 얇게 부치면 된다.



고명은 미리 썰어서 데쳐낸 무우채를 넣고 둘둘말면 끝

빙떡은 이렇게 간단하게 만들어 진다. 


최근에 빙떡은 여러가지 양념들을 함께 맛있게 만들면서

관광객들에게 제주의 별미와 건강식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데,


옛날 모믈정기와 솔라니구이(옥돔구이)를 먹을 때만큼 땡기지는 않는다.  



 먹을 것이 없던 보릿고개 시절에 척박한 땅에서 양식이 되었던 메밀,

제주의 메밀은 고려시대부터 오래도록 이어져온 가난한 사람들이 음식이었다.


그러한 메밀이 이제는 건강식으로 다시 찾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

예전 우리가 어렸을적이 먹던 그런 자연식이 가장 좋은 음식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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